대다수의 브라질 축구선수들과는 달리 제법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테니스 선수를 꿈꿨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축구는 진로라기보다는 취미 생활에 가까웠다.
카카는 상파울루 정식 유스 팀이 아닌 서포터즈 유스 팀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고, 교사였던 어머니의 교육열 때문에 축구보다 공부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했다.
어린 시절의 카카는 지나치게 깡마른 체구 탓에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한다.
카카가 공격의 전권을 쥐게 된 것은 카카의 능력과 더불어 당시 밀란의 상황이 맞아 떨어진 까닭이지, 결코 카카가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 롤을 능숙하게 소화해 내서는 아니다.
그랬기에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더 잘하던 후이 코스타를 주전에서 밀어내고 질라르디노보다 득점이 많았던 것이다.
밀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카카가 현대 축구에 반하던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카카의 능력이라기보단 AC 밀란과 안첼로티 감독의 능력이다.
카카의 공격력을 최대한 쓸 수 있게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인 안정적인 볼 배급 및 전체적인 경기조율은 안드레아 피를로가 맡았고
중원에서 개싸움을 펼치고 볼경합을 통해 전방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젠나로 가투소, 마시모 암브로시니, 클라렌스 세도르프가 맡았다.
이로인해 탄탄한 중원 장악이 받쳐줘 카카는 전성기인 2006/07 시즌 공격에 치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레알에 이적한 후 적응기간도 필요없었기에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녔으나, 리그 중반 무릎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때의 모든 기량을 상실하고 축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레알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AC 밀란으로 복귀한 카카는 공격이 아닌 중앙 미드필더로도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아무래도 과거 전성기의 기량과 주력이 아닐 뿐더러, 현대 축구가 발전하면서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 롤은 사장되어 가기 시작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실히 경험이 많이 쌓였는지, 어느 정도의 조율 능력을 보여 주기도 했고 애초에 잘했던 킬패스 같은 능력이 돋보이면서 중앙 미드필더로도 꽤나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꽃이라 불릴 만큼 슈팅, 드리블, 패스 삼박자를 두루 갖춘 선수였다.
퍼스트 터치와 오프더볼 움직임도 훌륭했다. 특히 아직까지도 치달 하면 카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압도적인 최대 속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공을 컨트롤하는 기술이 월등했다.
이렇게 기술과 스피드, 패스가 강점인 선수는 몸싸움이 약한 경우가 많은데, 카카는 피지컬도 탄탄하고 몸싸움마저 훌륭했다.
부상으로 먹튀가 됐다는 오명과 달리, 팀원의 노쇠화를 홀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07-08 시즌 이전에는 매 시즌 50경기 가까이 소화할 정도로 부상이 적었다.
절정의 폼이었을 때에는 초인이나 다름없었고 이러한 모습 덕분에 신계 두 명을 제치고 2007년 발롱도르를 거머쥐었다.
선수로서 최전성기를 보냈던 AC 밀란 시절에는 치달의 임팩트가 부각되었지만 다른 능력도 뛰어났다.
2004-05 시즌의 리버풀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갔던 건 카카의 날카로운 공격 전개와 킬패스였다.
특히 경기를 3:0으로 굳히는듯했던 크레스포를 향한 어시스트는 문자 그대로 대지를 가르는 킬패스. 또한 전성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득점력도 무시무시했다.
UCL에서 86경기 동안 30골을 넣어서 지금도 역대 득점 기록 20위 안에 들어가고, 특히 2006-07 챔스에서는 10골을 넣어 득점왕이 됐다.
UCL 득점왕이 발롱도르를 타는 징크스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졌는데, 이 징크스를 시작한 선수가 바로 카카였다는 것은 유념할 만하다.
카카의 능력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바로 역습상황인데 좌우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역대급 치달과 뛰어난 킬패스, 골 결정력으로 커리어 대부분의 공격 포인트를 역습상황에서 쌓았다.
세밀한 드리블 기술과 중거리 슛도 뛰어나 역습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반쪽짜리 선수도 아니었다. 전성기 때는 헤딩과 수비 가담을 제외하면 완벽한 선수였다.
물론 이러한 장점들 중 가장 독보적이고 또 다른 장점들을 잘 받쳐 준 건 바로 경악스러운 스피드였다.
때문에 카카의 전성기를 지켜본 세리에 팬들은 스피드를 바탕으로 이지선다의 플레이를 펼치던 정상급 선수가 스피드가 죽으니 다른 능력들마저도 어정쩡해져서 폭망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또한 부상으로 신체 균형이 깨지면서 몸싸움이 약해진 것도 한 몫 한다.
테크닉과 축구지능도 뛰어났지만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에 바탕을 둔 선수였고, 그 정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준 선수.
카카의 이런 유니크한 플레이 스타일과 수려한 외모 때문에 많은 팬들이 제 2의 카카를 기대하지만, 현재까지 이런 유형의 선수는 찾기 어렵다.
이혼 파문은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어난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는 듯 했으나, 2015년 8월 카롤리니가 SNS에 두번째 이혼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재결합 후 인스타에 올렸던 닭살 돋는 사진들도 전부 삭제한 상태였다.
처음부터 카카의 첫 이혼에 불륜설이 있기는 했었다. 얼마 후 카카와 바네사가 함께 찍힌 사진이 공개되었고 카롤리니와는 완전히 끝났다.
2016년 12월 또 새로운 여친이 공개되었다. 2016년부터 사귀기 시작한 12살 연하의 1994년생 브라질 배우 겸 모델 카롤리니 디아즈라고 한다.(전 부인과 성이 같다)
카카보다 어린 나이답게 약간 관종 스타일이다. 이전 아내와는 다른 타입의 성격으로 일부 카카팬들은 극도로 기겁한 사건들도 있었을 정도
2019년 11월 30일 가족들, 절친한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디아즈와 함께 결혼식을 올렸다.
2020년 10월 8일 , 디아즈가 딸을 출산해서 카카는 아들 하나 딸 둘을 둔 아빠가 되었다.
카카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카카는 전 부인과 낳은 두 자녀와의 사이도 원만한 듯 하다.
때때로 서로의 사진이나 아이들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다든가 양가 부모들이 카카와 전 부인 각자의 사진에 좋아요나 댓글을 남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서로 애인이랑 있는 사진엔 절대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mc5카를 사용 중인데 뛰어난 치달능력과 약한 수비가담 능력까지 스텟도 그렇고 인게임에서도 반영이 꽤 잘 되어있었다.
중계진이나 심판이 카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공을 몰고 달리는 그의 머리 위 이름을 볼 때마다 두근거리는 것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3명의 선수 중 한 명이기 때문인 것도 있다. 감성은 확실히 보장된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문제는 가격이다.
5카 기준 100~120억이나 하는 데 솔직히 그 정도의 인게임 능력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장급을 제외하면 70억 이상의 능력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감성값으로 30억. 부담되는 금액이지만 능력 대비 이정도면 꽤 만족하면서 쓸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치달의 대명사, 누구나 부러워 할 인생을 살고 있는 카카를 알아봤다. 인생은 카카처럼,...